2015년 7월 25일 토요일

안녕. 방금 심각한 절망을 겪고난 후 필연적으로 파생하는 '잠' 속에 도피한 후 깨어났는데 웬일인지 오늘의 '잠'은 나에게 손톱만큼한 구원의 가능성조차 제공해 주지 않아 더욱 더 절망에 빠져 이번 절망의 심각성을 심각하게 재고하다가 그 재고하는 지겨운 집착에 다시 배가된 절망을......하다가 자네의 편지를 받았다. 

갑자기 봄이 서러워짐은 왜일까. 미쳤네.

너를 생각하면 항상 무슨 구름 생각이 나.


사랑은 서로의 그림자를 나눠 갖는 것일까.


네 친구는 아무도 읽지 않는 얇은 책처럼 작은 방 안에 꽂혀 있다.

내 마음을 과연 잘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너도 알겠지만 난 좀 괴팍한 형식주의자여서 어떤 사고의 틀이나 감상의 공간이 주어지기 위한 내 주위의 여건에 심각한 알레르기를 느낀다.

너의 긴 편지에 대해 솔직히 미안한 부담을 느낀다. 물론 그 부담은 일종의 사랑의 과잉액에서 비롯된다면 내가 너무 행복한 것일까.

아주 멀리, 자네가 하루 종일 뛰어도 만날 수 없는 곳. 1983.9.28

이곳은 대학도서관. 네 친구는 아무도 읽지 않는 얇은 책처럼 작은 방 안에 꽂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일 것이다. 나는 요즘 항상 그것만을 생각한다. 모든 것은 믿을 수 없다. 기억도 그렇다.

어떤 확실한 것, 즉 사소한 '확실함'이 하나라도 나에게 다가온다면 나는 요즈음의 전 생애를 그것에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생각 때문에 우울해 하곤 하였다. 

도시는 흑백사진처럼 펼쳐져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어지럽게, 그러나 각자 확실한 직선을 그으며 걷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속에는 나도 보였다.

그때 나는 내 속에 그토록 많은 슬픔이 묻어있는 줄 몰랐다. 조금만 몸을
기울여도 내 속에 있는 서글픔들이 몸 밖으로 엎질러질 것 같았다.


주옥같은 표현이 많은 '기형도 산문집'을 사실 도서관에서 빌려놓고 너무 좋아 반납하기 싫은데. 그러면 안되니까 반납해야지. 절판된 책이니까. 다른 사람도 봐야 하니까! 사실 나만 보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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