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비실비실 침대에서 앓기만 하느라 한달이 후딱 갔다. 7월은 페스티벌의 달이니까 이번달은 공부를 할 생각이다. 영어도 잘하고 싶고 스페인어도 잘하고 싶다. 마크가 엄마하고 네덜란드어로 통화했다가 아빠하고 스페인어로 통화할때 너무너무 부럽다. 그러다가 왈로니지역에 가면 프랑스어도 하고 나하고는 영어로 말하고. 독일어나 이탈리아어로 된 티비프로그램도 그냥 보고. 내 토플문제집은 비만 내리는데. 치. 스페인어를 알려달라고 조르고 있지만 얘는 정말 가르치는데는 젬병인 것 같다. 저번에 한번 줄리앙반즈의 책을 읽다가 모르겠는 문장이 있어서 이게 왜 이렇게 되냐고 꼭 이렇게 썼어야 하는 문장이냐고 문학적 표현이냐고 물었는데 자기한텐 너무 당연한 자연스러운 문장이라 설명을 못하겠다고 해서 그 뒤로는 모르는 게 있으면 구글링을 하고만다.
지난달 21일에는 Deerhunter를 보고 왔다. 작년 지산에 가서 뙤약볕아래에서 싸구려 하이네켄을 마셨다가 라디오헤드 볼때 체해서 공연 2분을 앞두고 안전요원들 도움을 받아 토하러 완전 앞자리에서 수많은 관중을 헤치고 뒤로 나온적이 있었는데, 심하게 체해서 토하고 또하고 또하느라 화장실 근처에 앉아서 세상이 돌아가는 기분을 느끼며 저멀리서 땅바닥만 보며 거의 베이스소리만 들어야했던 경험이 있다. 디어헌터를 보는날에도 서있으면 토할 것 같은 기분이라 가장자리에 주저앉아서 들었어야했다. 근데 요렇게 즐기는 콘서트가 의외로 나쁘지 않다. 당시에는 라디오헤드가 공연을 너무 오래해서 마이크를 뽑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지만 네덜란드에서 좌석에 앉아서 편하게 고퀄의 라디오헤드공연을 감상했을 때보다 귀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언덕위에서 조명에 비친 수많은 관중들이 손이 흔들흔들 하는데 심해바닥에 살 것 같은 돌기 많은 해양식물처럼 보였던 게 아픈 와중에 무지무지 예뻤다. 디어헌터는 이번 모노매니아 앨범을 주로 연주했는데, 앨범으로 들었을 땐 너무너무 내 취향이 아니어서 한번 듣고 안들었는데, 라이브로 보니까 완전 최고, 최고였다. 옆모습이 여자보다 예뻤던 Lockett Pundt가 작곡한 Agoraphobia도 앵콜곡으로 불렀다. Bradford Cox는 너무너무 말라서 환자같다고 친구한테 말했는데 실제로 말판증후군이란다. 끝나고도 어질어질했지만 공연이 너무 좋았어서 방실방실댔다.
25일에는 Brugge에서 열린 친구어머니 전시에 갔다. 예전에 한번 유리공예를 하신다고만 흘려말하고 사진도 안보여줬어서 그저그러려니 하고 갔는데, 은퇴를 하시고 4년전부터 시작한 실력이 아닌 것 같은 정도로 굉장히 예뻤다. 세라믹과 유리를 이용해서 만드시는데, 유리를 불어서 만드는 게 아니라 세라믹틀에 유리를 넣고 오븐에 구워서 만드신다고 하셨다. 제목들이 독일어였는데, 'FINGERSPITZENGEFUHL'이라는 제목이 맘에 들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정확히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 아는 좋은 감각'이라고 친구가 말해줬는데 독일어는 이런게 멋진 것 같다. 한 단어 안에 굉장히 디테일한 뜻이 들어있고, 뉘앙스가 있어서 번역하기 어려운. 나는 독일어가 너무 어려워서 그냥 독일어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독일사람들이 똑똑해 보인다. 전시를 보고 Leuven 근처의 어머니 집에서 밥도 먹고 자고 왔다. 친구가 어머니네 갔다올 때 락앤락에 어머니가 만드신 스파게티소스와 스프, 파이, 티피컬벨지안뿌드를 싸와서 엄마네 갔다올 때 유난히 반가웠는데, 그 요리를 즉석에서 먹게됐다. 우리나라 갈비찜과 비슷한 음식을 해주셨는데 고기가 엄청 부드라왔다. 생수하나마저 ISKILDE, VOSS 같은 고급브랜드였고, 집에서 질리게 먹는 샌드위치도 치즈랑 살라미가 급이 달랐다. 이 친구는 탭워터 마시는데.. 주변에 낙농하는 곳이 있어서 로우밀크랑 치즈를 사러 갔는데, 신선한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도 같이 팔아서 먹어봤다. 그닥이었다. 저녁에는 어머니가 간호사였으셔서 내가 일어날 때마다 뒷통수가 엄청 땡긴다고 하자 혈압을 재주셨는데 심각한 저혈압이었다. 철분보충제를 사먹고, 아침에는 오렌지쥬스 한잔을 마시고, 끼니 거르지 말고 잘 먹으라고 하셨다.
26일에는 친구 어머니랑 둘이서만 근처에 있는 수도원 구경을 갔다. 지금은 다 망가져서 잘 알아보기 힘들지만, 돌과 쇠로 만들어논 현대미술 작품이 잘 배치되어 있어서 아름다웠다. 돌아오면서 근처에 있는 바다도 보여주셨는데 말이 돌아다녔다. 여름에는 그 말이 바다에 들어가 새우를 잡아온다고 한다. 물이 목까지 잠길때까지 그물을 끌고 들어갔다가 나오면 새우가 한가득 잡혀서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갓잡은 새우를 구워먹는다고 한다. 꼭 먹어볼테다. 전에 잠깐 살으셨다던 Veurne라는 마을도 보여주셨다. 릴케와 폴 델보가 살았던 마을이라고 하셨다. 어느 날은 남편 분이 은행에서 일을 할 적에 오늘 굉장히 이상한 사람을 봤다며, 집에서 입을 법한 가운과 슬리퍼를 걸치고 은행엘 왔다고, 노숙자같은 사람인 줄 알았다고. 근데 그 사람이 폴 델보였다. 사실 폴 델보는 굉장한 부자였는데, 평소에 그렇게 입고 다녔다고 한다. 밥을 먹고 Kurt Vile 공연을 보러 Brussels로 향했다. 그런데 오마이갓, 가는길에 어제밤에 영국 웸블리에서 열린 독일리그 Bayern VS Dortmund 축구경기를 보고 돌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길이 꽉 막혀 도로에 갇혔다. 프랑스에서 런던으로 차로 가려면 그 길을 꼭 지나야 한다고 한다. 어제 밤에 티비에서 재밌게봤던 경기가 우릴 이렇게 괴롭힐 줄이야.빨간색과 노란 수건이 달린, 번호판에 D가 적힌 차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길이 막혀서 정차되니까 서로 창문너머로 조롱하는게 재밌었다. 진팀이 이긴팀을 조롱하기도 해서 왜저러냐고 했는데 그 두 팀은 번갈아가면서 이겼다 졌다해서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같은 관계라고 저러는걸 즐긴다고 했다. 그 많은 독일차들 + 한꺼번에 진행되는 도로공사 때문에 정말 기어갔지만 그 구역을 탈출하니까 괜찮았다. 그래서 오프닝밴드만 놓치고 커트바일을 봤다. 라이브로 보니까 엄청 좋고 그런것도 없었고, 무엇보다 내 뒤의 커트바일광팬때문에 짜증났었다. 시작전부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취해서 춤추는데 자꾸 치고. 뭐 즐기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만 목소리가 바보같은데다가 불어를 써서 정말 짜증났다. 세번째 밀칠때는 뒤돌아서 흉악한 인상을 보이면서 헤이!!! 이랬더니 나중에는 센터로 가서 또 그러고 있었다. 그래도 노래부를때는 소리안지르고 노래 중간중간에만 소리질러서 다행이었다. 나는 정말 가수가 노래할때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싫다. 오프닝공연이라도.
28일에는 Animal Collective를 보러갔다. 아주 오래전에 몇몇 사람들이 애니멀콜렉티브를 좋아한다는 뭔가를 보고 불법다운로드했다가 잘못받아서 진짜 동물소리모음집을 받은 적이 있었다. 트랙들 제목이 1.hippo, 2.elephant 이런식으로 동물 이름이고 재생하면 진짜로 처음부터 끝까지 쌩 동물 소리밖에 없었다. 그래서 참 허세돋는 현대음악가인가보다 했는데, 그건 그냥 잘못받은 거였다. 그래서 2년 뒤에야 진짜 애니멀콜렉티브를 듣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Brother Sport가 너무 좋았다. 난 애니멀콜렉티브가 아니라 그냥 브라더스포츠 저 노래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라이브로 듣는데 정말 정말 행복했다. 사람들 다 전부 콩콩 뛰면서 돌고있는데, 종교의식같았다. 나도 정말 콩콩 뛰고 싶었지만 포토어크레디테이션때문에 사진을 찍느라, 그리고 영상으로 담아두고 싶어서 그러지못했다. 그래도 그때 찍어논 영상 계속계속 돌려보면 그때 행복했던 기분도 느낄 수 있다. 특히 간주를 2분정도로 길게 뽑아주셔서 완전 신났다. 세트도 마치 거대한 고래 속에서 연주하는 것처럼 공기로 채워진 이빨, 뿔기둥이 있었고, 거기에 프로젝터를 쏴서 칼라풀하고 광적이었다. 근데 2시간 공연한대놓고 1시간 30분만에 끝내서 아쉬웠다. 그리고 오프닝이었던 Raula Halo도 좋았다! 키도 길고 머리도 긴 예쁜 언니가 나오더니 전부 라이브로 믹싱했다. 비트도 특이하고 좋았다.
30일에는 Brussels에 있는 Magasin4에서 HEALTH를 보았다. 한인계통 교포처럼 보이는 건장한 기타리스트가 엄청난 샴푸냄새를 풍기면서 헤드뱅잉도 하고 바닥에 기어다니셨다. 뭔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자기들끼리 싸웠는지 공연전에도 자기들끼리 엄청 회의를 하더니 공연을 엄청 짧게 끝내버렸다. 앵콜도 나왔는데 20초정도 강력하게 하고 들어갔다. 아무튼 그 콘서트홀 공간이 좋았다.
6월 1일. 유럽을 여행중인 곰비가 파리에서 건너왔다. 너무너무 반가웠다. 벨기에에서 한국친구라니. 같이 브루즈에 가서 엄청 많은 백조들을 보고, 특별한 맥주를 마시고 돌아왔다. 처음 본 백조의 발은 새까맣고 징그러웠다. 매우 흐리고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어서 좀 아쉬웠다. 햇빛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풍경에 엄청 영향을 미치는데, 브루즈는 이날 그닥 예쁘지 않았다.
2일에는 곰비와 앤트워프에 갔다. 전에 혼자갔을 때 보았던 가구거리가 인상적이어서 보여주고 싶었는데, 처음에 내키는대로 걸었다가 한참 헤맸다. 그래도 내키는대로 걸은 덕에 맛있고 싼 식당을 발견해 밥을 먹었다. 여기 있다보면 스파게티가 질리게 되는데, 그 집 스파게티는 정말 맛있었다. 개구경 애기구경 잔뜩하고 웬 터키인들 잔뜩 있는 거리까지 갔다가 놀이기구 있는데도 지나서 다시 센터로 돌아왔다. 거기서 다시 시작하니까 가구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 저번에 혼자왔을 때랑 다르게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마라톤행사도 있었고 사이클행사도 있었다. 벼룩시장도 있었는데 홍대놀이터에서 하는것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흔한 물건들이나 골동품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만든 것들을 팔았다. 앤트워프가 장식예술이 유명하다던데, 그래서 그런지 소품들이 무지 예뻤다. 날씨가 전날과 다르게 너무 좋아서 얇은 반팔만 입고 돌아다녔는데도 더웠다. 하지만 그늘에선 추웠다. 스웨터를 입었다 벗었다 스카프를 둘렀다 가방에 넣었다 많이 반복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떡볶이를 해먹었는데 오뚜기가 다 떨어져서 하인즈를 썼다가 식초맛만 나고 하나도 안매워서 별로였다.
3일에는 곰비와 내가 머물고 있는 겐트를 구경했다. 와플맛을 보여주겠다며 르와주와플과 벨기에와플을 둘 다 먹었더니 서로 속이 느끼해서 빨리 집에와 김치볶음밥을 해먹었다. 밤에는 La Choffe 맥주를 마시며 거실에 프로젝트를 쏴서 Ruby sparks를 봤다. 후진 미니프로젝터는 파일을 받아들이는 데 영 까다로우셔서 자막을 안쏴주는건 물론이고 가끔 영화파일 자체를 못읽거나 소리를 안내보내주시기도 한다. 이번에도 역시나 소리가 안나와서 다른 영화를 시도하다가 결국 옥스케이블은 맥북에, 영상케이블은 프로젝터에 꽂고 싱크를 맞춰서 봤다. 아주 자연스럽게 잘 맞췄었다. 영화는 참 별로였다. 이건 비메오에서 단편영화로 흔히 돌아다닐만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했던 폴다노는 데어윌비블러드를 보고 나서라 그런지 왜이렇게 얄미워보이는지 모르겠다.
4일에 곰비는 런던으로 갔다. 여유있게 준비했다가 나중에 촉박해서 브뤼셀에서 런던으로 가는 유로스타를 놓칠까봐 초조했었다. 아침에 옆방 사는 베누아가 거실에 Peter Broderick의 음악을 틀어놔서 슬펐다. 돌아오니까 다들 직장에 나가서 집이 텅텅 비어있었다. 너무 허전해서 괜히 서러웠다. 플랫메이트가 돌아왔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친구는 카우치서핑에 겐트를 여행하는 한국인 관광객 있나 알아보라며, 이 집에서 묵게 하라고 했다. 하지만 카우치서핑 웹사이트가 리뉴얼되고 나서 뭐가 뭔지 몰라서 다시는 안들어가봤고 들어가기도 싫다.
그리고 4일 오후부터 날씨가 미친듯이 좋아서 요즘은 공원에 매일 나가고 있다. 여기서는 내 몸매로도 나시티와 짧은 치마 짧은 반바지를 원없이 입을 수 있어서 좋다. 공원에 나가면 비키니만 입고 누워있는 여자들도 있고 심지어 비키니도 아니고 속옷만 입고 누워있는 여자들도 있다. 5일에는 중고자전거를 알아보러 여기저기 발품팔며 돌아다녔지만 전부 나보다 커서 나에게 맞는 건 하나도 없었다. 65유로 짜리 꽤 괜찮은 중고 자전거가 있었는데, 그게 제일 아쉽다. 나머지는 중고인데도 150유로가 기본으로 훌쩍넘었다. 결국 200유로 중반대의 새 자전거를 사기로했다. 큰 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갖고 싶지만 큰바퀴는 전부 나에게 너무 높다. 흑. 매장엔 없어서 카탈로그를 보며 우선 주문을 해놨다. 수요일에 가서 살 것 같다. 이히히.
갑자기 내 블로그가 일기장으로 바뀌었다. 그것도 밀린 일기장; 갑자기 밀렸던 콘서트와 곰비의 방문, 앤트워프와 브루즈투어 등등을 한꺼번에 올리기가 막막했다. 어차피 왜 하는지 모르는 블로그니까 내 맘이다. 통계를 보니까 미국인들이 많이들 오던데 미안. 한국친구들이 내 블로그를 자주 방문하지 않아서 글도 쓸 수 있고 좋다.
나보다 예쁜 Lockett Pundt |
FINGERSPITZENGEFUHL |
신선한 치즈와 우유를 살 수 있는 곳. 애들 견학용으로 많이 오는 것 같았다. |
한번 새 아이스크림 떨어뜨렸더니 저렇게 받침 과자도 같이 주셨다 |
친구가 10대때 ROSKILDE에서 PIXIES를 보고 온 후 이름을 지어준 pixie |
저혈압으로 고생 |
이런 차가 무지 많았는데 번호판 지우기 귀찮.. |
누가 목에 둘러놨다 ㅋㅋ |
난 이 사람이 좋아 |
계속 다른 멤버 둘이 불렀는데 못알아채고 심취해서 연주하다가 두곡 뒤에야 알아채고 피식 |
목줄이 거슬렸는지 계속 저러고 갔다 |
퀄리티에 비해 엄청 싸더라니 집에 와서 친구한테 말하니까 파산한 회사라고. 그래도 사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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