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30일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 용변을 보는데 e.b.가 메신저로 보내놓은 사진을 확인했다. 사진첩 뒤지다가 발견했어 라는 말과 함께. 한 모서리가 보이는 공간의 사진이었는데 변기에 앉아 나는 한참을 여기가 어딘지 생각하며 바라보았다. 적색 카우치와 그 위에 얹어진 초록색 기타, 벽에 걸린 미술작품 포스터, 그 옆에 걸린 글자가 쓰여진 포스터 그리고 그 위에 걸린 기다란 나무통 악기. 빗소리를 내는 나무통 악기는 분명 봤던 것인데 누구것인지 기억이 안났고, 지금도 누구 것인지, 왜 거기 있는지 모를 카우치 위에 있던 초록색 기타는 더더욱 내 기억을 흐리게 했지만 그 사진은 M집의 거실사진이었다. 커튼을 보고 알아챘다. 밝고 어두운 오렌지색이 세로줄로 뒤섞인 커텐. 처음에 보고 정말 먼지가 많게 생겼다고 생각했던 나는 낮에 커튼을 치면 온 공간이 주황빛으로 물드는 것을 좋아하곤 했었다. 우리가 함께 살던 겐트에 있던 M의 집. M이 아니면 살면서 들러보지 않았을 겐트라는 도시에 있던 그 집. 삼년 전 그곳에서 일년이나 살았지만 이렇게나 낯설 수가 있나. 우리가 헤어질 무렵 M의 집은 인테리어가 전부 바뀌어 사진과 달라지긴했지만 이렇게나 낯설 순 없었다. 내가 생활하던 공간조차 이렇게 잊었다면 나는 M과의 추억을 얼마나 많이 잊고 있는 걸까. d.h.가 늘 서운해하며 지적하던 나의 기억상실증은 특정인물 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던 노래, 책, 영화, 사람, 사건들 전부 모두다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이것은 어렸을 적 부모님의 부부싸움을 잊기 위해서 시작된 것일까? 아니면 부모님의 이혼 후 일년에 세번이나 이사를 다니면서 친구들에게 정을 떼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냥 이렇게 태어난 것일까? 아님 모두가 겪는 정도의 아무것도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인걸까?
나는 M과 겐트에서 생활할 때부터 이상한 현상을 겪곤 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 여기서 무얼하고 있는건지 잠시동안 생각을 해야 깨달을 수 있었고, 내 옆에 누워있는 이 사람이 내 남자친구임이 굉장히 낯설곤 했다. 마치 지난 몇달을 껑충 건너뛴 것처럼 현재의 나에 대해 복습을 해야하는 그런 아침이 가끔 있었다. 그럴때면 마치 평행우주를 드나들며 그 전의 삶과 조금 다른 버전의 나의 삶을 사는 느낌이었다. 지금도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데 요즘의 느낌은 그 전의 것과는 조금 다르게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미래를 살고있는 것만 같은, 무언가가 빗나간 느낌이다. 이전에 다른사람과 함께했던 기억은 물론이거니와 가까운 과거마저 잊어버리고 있고, 그런 기억상실의 증상은 무섭게 하루하루를 쫓아와  가끔 아침마다 나 자신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야하는 지경까지 이르렀고, 그렇게 생각해낸 나 자신이 잘못된 곳에 있다는 생각을 하는 상태까지 와버렸다.
물론 막연히 내가 M과 어떻게 지냈는지 시간을 더듬어 생각하면 아주 디테일한 것까지 생각이 난다. 하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무슨 수로 알 수 있을까. M이 자기만 기억하는 일을 나에게 얘기해주지 않는 이상 나는 내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조차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몇달 전 다른 나라의 락페스티벌에서 다시 만난 그 M은 나의 기억과는 다르게 생겼고, 목소리가 이상했다. 기억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그렇게 왜곡되었던 거라면 과거는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렇게 금새 희미해져버리고마는 나의 기억이 나는 좋다. 아마 잊고싶은 순간이 많기 때문이겠지. 과학자들에게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전과 후가 아닌 그냥 존재하는 어떤 것이기 때문에 전과 후가 없다고. 순간 순간만 있을 뿐, 시간이라는 개념은 어쩌면 인간이 너무나 당연하게 믿는 미지의 어떤 것이라고 앤서니는 그랬다. 나는 이 말이 너무 터무니없어 계속 반문을 했지만 인간 나부랭이가 무엇을 알까. 시간이란 것은 어떤 것일까. 어느 세계에선 우리 인생이 0.1초이고 엄청나게 늘어져 느리게 돌아가는 시간속에 우리는 그 속도에 맞춰 살고있는 것일텐데.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받아들일 필요도 없지만. 소중한 순간을 모두 기억한다면 난 그 순간을 그리워하며 슬퍼할것이다. 나의 현재를 과거의 어느 순간과 비교할 것 없이 그 순간 자체의 기준으로 행복해하며 슬퍼하는 삶. 운동화 속에 들어가버린 작은 돌맹이처럼 뭔가를 잃어버린 기분이 평생 날 거슬리게 할테지만 그것이 무언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1월의 독일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버려져있고 건물 벽에 달라붙어 자란 식물의 잎이 없는 가지에는 검은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새들은 그 검은 열매를 먹으러 왔다 창틀에 찾아오기도 하고 창가의 고양이들은 동시에 고개를 움직이며 그런 새들을 쫓는다 오늘은 내가 사는 아파트 앞의 커다란 나무 하나가 잘려 사라졌다

2019년 3월 10일 일요일



알고보니 자신이 트롤임을 알게 됐을 때
나는 너무 귀여워서 울음이 터져버렸다.

북유럽여행할 때 북유럽사람들이 트롤을 믿는다는 것이
너무나 귀여웠는데.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도 만들어버렸어.. 
영화가 끝나자마자 북유럽여행을 같이했던 그 친구에게 메일을 썼다.

얼굴도 뭔가 나랑 닮은 것 같고
누구도 상처주기 싫은 내 맘과 너무 닮아서
너무 몰입해버렸다 


Border, 2018



2019년 3월 6일 수요일

친구의 친구가 서울지사에서 일하게되어 한번도 본적도 없는 사람에게 서울구경을 시켜줘야했다. 영어주소를 나에게 주었는데 네이버맵이 위치를 잘못 가르쳐주어 나는 을지로4가역에, 그 사람은 을지로입구역에 있었다. 전화로 그냥 거기 있으라고 했는데 방법이 있다며 한번도 써본적이 없는 왓츠앱 위치공유 기능을 켜보라고했다. 서로의 방향을 향해 걷다가 만나자고했다. 우버 두대처럼 그 사람과 나의 사진이 담긴 동그라미 두개가 떠있었다. 오분동안 그렇게 아무 메세지도 없이 성큼 성큼 가까워지는 동그라미만 보면서 걷는데 뭔가, 귀여웠다. 걷다보니 어느새 동그라미가 겹쳐져 있어 지나쳤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는데 미세먼지 속을 헤엄치며 나와같이 핸드폰을 코앞에 두고 걷는 한 사람이 보였다.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고 서로 헬로, 헬로 했다. 귀여운 기술이다 증말. 
❤♥❤♥❤♥  

우리는 같은 날 우리가 같이 살던 베를린을 떠나기로했다.
그날은 우리가 서로를 떠나는 날이기도 했다.
뉴질랜드에서부터 같이 살았던 우리는
베를린에서 각각 뉴욕으로 런던으로 멀어지게 됐다.

우리는 우리가 결정한 일임에도
이해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고

우리 왜 헤어지는거지? 
라는 의문과
벌어져야 하는 일이야.
라는 결론은 반복됐다.

떠나기 전 일주일 내내 우리는 
실실 웃으며 괜찮다가도
뜬금없이 울었다.

누구든 한쪽이 먼저 울면
둘이 같이 엉엉 울었다.
아이처럼 입을 벌리고 바보같이 울었다.

그는 언제나 무슨 이유에서건
내가 울면 같이 울던 사람이었다. 

언제나처럼 빈 페트병이 된 생수병을
한병에 700원을 돌려받을 수 있는 빈 페트병을
모아서 슈퍼에 가져가려고 가방에 담다가
그는 단소를 불 듯 빈 페트병을 불기 시작했다.

후 후 푸 푸
울리는 소리를 내다가 
틀어진 각도에 바람이 새는 소리가 나기도했다.

나도 재밌어서 따라 불다가
둘이서 빈 페트병을 부는 모습과
바람이 새는 그 소리가
너무 예뻐서 울음이 터졌다.

웃다가 펑펑 우는 
그런 아름다운 것은
그 때부터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