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30일 일요일

BARCELONA (30 MAY-6 JUNE, 2016)

5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기억을 더듬으며 쓰는 여행일기.

4월. 스페인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6월에 있을 프리마베라 페스티벌을 위해서 1월부터 생각해왔던 여행.
뉴질랜드에서 3개월 동안 알바하면서 모아둔 돈을 탈탈 털어 비행기표를 샀고 잔액은 0을 찍었다.
그리고 다음날 알바에서 잘렸다.
돈을 벌기 위해 물 불 안가리는 한인 부부가 차린 일식집에서.
그 날 나는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에 앤서니를 불러 나 여기서 너무 일하고 싶지 않다고 했고,
앤서니는 그럼 싫다고 하라며 "너가 그 사람에게 NO라고 하는 건 너 인생에게 NO라고 하는 것과 같아서
다시는 그런 사람이 너 인생에 찾아오지 않을거야." 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만두고 싶지만 여행비를 벌어야하니 버티자 vs 이런 사람들과 한순간도 더 같이 있지 말자 그만둬도 어떻게든 되겠지
중에 고민하다 제발 그냥 그들이 날 자르게 해주세요. 하며 빌었고
나는 말도 안되게 운이 좋게도 그 날 아무 이유 없이 잘렸다.
주급 400달러를 현금으로 받아 주머니에 구겨넣고 집으로 오면서 막막함과 행복한 기분에 어쩌할 줄 몰랐다.
쨌든 배경은 이렇다. 5월 난 일하지 않았고, 어메이징한 메이를 보내며 고작 삼십만원인가.. 만 들고 갔다.

그렇게 걱정을 잔뜩 안고 파리를 거쳐 바르셀로나로 떠났다.


돈이 없어 숙박 예약을 미루고 있었더니 프리마베라 때문에 모든 숙박은 거의 매진이었고,
사년 전 그렇게 구하기 쉽던 카우치서핑은 프리마베라 때문에 친구들이 오거나 게스트들이 넘쳐 안된다며 거절해왔다.
겨우겨우 구한 바르셀로나 호스트 알프레도.
이바이크로 투어를 하면서 멋진 풍경과 함께 프로페셔널한 사진을 찍어주는 관광가이드다.
몇백명을 호스팅한 경험이 있는 프로페셔널한 호스트였다.
사년 전 바르셀로나 여행을 왔을 때 라 메르세 페스티벌 기간이라 그라시아지역의 상점들이 문을 닫아 아쉬웠는데
알프레도의 집이 딱 그라시아에 있어 문 밖만 나가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원래 카우치서핑은 문화교류차원이라 서로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친구도 되고 하는데
알프레도는 투어일로 바쁘고 난 페스티벌때문에 오후에 나가 동이 틀 녘에 들어와서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다.
점심시간 아주 잠깐 짬이 나 불닭볶음면을 해주었는데 의외로 너무 잘 먹었다.


베란다에서 매일 보았던 스페인의 강한 햇살에 선탠을 하는 의자.


전에 모두 문을 닫았던 그라시아는 그래피티와 간판 구경만으로도 행복했는데
그 공간들이 모두 문을 열어 무슨 마법이 풀린 마을 같았다.







문제의 그 하몽 세라노. 
벨기에에 있을 때 그렇게 맛있게 먹던 세라노가 그리워서 마트에서 보자마자 샀는데
2개월간 채식을 하다 고기가 들어가서 그런지 바로 체했다.
그렇게 도착한지 하루만에 토를 하며 하루를 버렸다.


체한 날 하루종일 자서 다음날 새벽 다섯시반에 일어났다.
사년전엔 입장료 같은 거 없었는데 알프레드가 이젠 오전 8시 전이나 오후 8시 이후에 가야 공짜라고 했던 게 생각났다.
알프레도 집에서 십분 거리라 서둘러 구엘공원으로 향했다. 





한적한 구엘을 마음껏 누렸다.














알프레도의 집에 붙여있던 바르셀로나 지도를 얼핏보고 깜짝놀랐다.
가슴이 위인줄 알았는데 등마사지를 받는 그림.


프리마베라 워밍업데이를 가기 전 그라시아 돌아다니기.
사고싶던 향수. 비싸지도 않았는데 조금의 사치부릴 돈도 없었다.



옥수수우유를 팔던 가게




비건 음식을 찾아다니다가 발견한 그릭음식점.
뉴질랜드가 워낙 물가가 비싸 스페인 물가가 싸게 느껴졌다.


옥수수우유와 콤부차.
데일리프리, 락토스프리 옥수수우유 처음 마셔봤는데 맛있었다.
뉴질랜드에선 그렇게 권해도 안마시던 콤부차.
하루 체하고 난 뒤 너무 땡겨서 매일같이 먹었다.


콤부차를 팔던 WOKI ORGANIC MARKET.
각종 비건, 베지테리안 음식을 팔고 유럽의 유기농 건강식품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내가 사랑하는 Carrer d'Astúries에 자리하고 있다.



저 코코넛퀴누아 테이크아웃해서 먹었는데 진짜 맛없었다. 웩.






거기서 먹은 베지테리안 라자냐. 맛있었다.
스페인이라 그런지 토마토와 올리브오일이 들어간 샐러드가 특히 맛있었다.


프리마베라에서 본 첫 공연은 GOAT.
음악은 당연히 좋고 두 사람 춤 추는 게 너무 재밌다.
나는 맨앞에서 봐서 사운드도 좋았는데, 뒤에서 봤던 친구들은 사운드가 개판이었다고 했다.


고트를 보던 핑크헤어.
나중에 뒤돌아봤는데 50은 넘어보이는 여자분이셨다.
멋져요.


프리마베라를 함께 해준 친구들. 
너네사진만 이렇게 이상하게 나왔다 애들아..^^; 까를라는 보이지도 않네.
2년만에 만난 전남친을 보니 싱숭생숭해서 이틀은 울면서 집에 왔다.
어쨌든 결론은 나는 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3년전 벨기에에서 본 뒤로 SUUNS를 볼 때마다 내가 뚫어지게 쳐다보는 이 멤버.
정확히는 Edie's dream을 연주하던 모습을 본 뒤인데 음악에 빠져들어 연주하던 모습이 너무 좋아서.
모든 멤버가 턱수염과 머리털이 무성하게 자라 웃겼다.
새벽 2시에야 시작한 공연은 최고 최고 최고였다.
Translate는 한시간동안 계속 듣고 싶었다.
마크와 까를라와 바로 맞은편 클럽에서 다른 공연 보다가 너무 구려서 나만 이 베뉴로 먼저 넘어왔는데 둘은 끝내 안보였다.
네덜란드에서 레이블을 차려 운영한다는 마크친구 레미와 공연이 끝나고 마주쳤다.
지하철도 버스도 트램도 운영하지 않는 시간이라 레미와 걸어서 귀가했다.
라디오헤드에 대해 얘기하면서. 이주전 쾰른에서 본 라디오헤드 공연은 아주 좋았다고했다.


어째서인지 내 심카드는 그들의 전화와 문자를 받을 수 없었고 연락이 잘 안 돼 다음날 혼자 다녔다.
그들이 간다고 했던 락디럭스라는 공연장을 아무리 찾아내려해도 못찾았다.
스태프들도 모르는 건 뭐람.
그 덕에 9개 정도인 스테이지 위치를 제 발로 걸어다니며 숙지하게 되었다.
에라이 이것들아 락디럭스가 어딨느냐. 하며 혼자 바나나에 이 자국이나 내고 있었다.
 한참 뒤에 저 멀리서 중국인으로 보이는 서태지를 닮은 남자애가 오더니
나를 어제 봤다며 반갑다고 말을 이어가려했다.
아일랜드에서 음악공부를 하는 실비안은 이번 페스티벌에 대해 굉장히 열정적이었고 돈을 많이 썼는지 vip팔찌를 하고 있었다.
안그래도 스테이지마다 vip구역이 따로 마련돼 있는 것을 보고 역겹다고 생각했던 터라 정이 별로 안갔다.
락디럭스 스테이지 어디있냐고 물었지만 그도 몰랐다.
그 대신 하이네켄 히든스테이지를 가봤냐며 알려줬는데, 
그 스테이지는 당일 나눠주는 한정 티켓을 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왠지 지나갈 때 엄청 긴 줄이 있었는데, 그 줄이었다.
실비안은 만난 기념으로 주는 선물이라며 그 히든 스테이지의 PEACHES 표를 주었다.
난 한번도 안들어봤는데 여행 오기 전 앤서니가 내가 좋아할 뮤지션이라고 했던 것만 기억났다.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 피치스의 무대를 놓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자리를 뜨고 싶어 친구들을 찾으러 가야겠다고 했고, 
BEAK>> 공연때 내 자리를 맡아놓겠다며 페북신청을 해서 연락을 지속하자고 했다.
포티셰드 출신 멤버인데 자꾸 포티쉬핸드라고해서 거슬렸다..


CAR SEAT HEADREST
고등학교 밴드부 남자아이들 같았다. 파릇파릇.
마크를 발견했고 보컬이 참 귀엽고 음색이 좋았으나 음악이 영 내 취향이 아니어서 중간에 빅을 보러 떠났다.


MENTALLY ILL 이라고 써진 티셔츠.


관객들과 소통 너무 잘해주시던 BEAK>>


시간을 맞춰 하이네켄 히든스테이지로 왔다. 내부는 유원지 사파리 같은 분위기였다. 
피치스가 어떨까 궁금했는데 시작 전 니나 시몬의 Four Women이 흘러나와 좋은 공연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번 프리마베라 개인적인 베스트 쓰리에 드는 피치스 공연.
 rub rub을 외치며 춤을 추던 그녀.


중간중간 계속 관객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던 피치스.
의상, 음악, 가사, 무용 다 너무 좋았다.
페미니즘적인 내용을 담은 가사는 노골적으로 선정적인 부분이 많았는데 하나도 불편하지 않고 너무 재밌었다.
버자이나옷, 손이 많이 달린 옷 등 파격적이고 재밌는 의상은 레이디가가가 그녀를 따라한 것 같았다.
특히 두명의 남,녀 댄서가 추는 선정적이고 코믹한 춤이 충격적이게 좋았다.
난 왜 여태 피치스를 몰랐던거지.


투명한 그것 속으로 들어간 피치스


피치스의 댄서. 공연을 하다 무대 밑으로 내려왔고, 열광하던 한 관객에게 키스를 했다.
필름으로 찍어놓고 두달뒤에 결과물을 받았을 때 너무 잘 찍혀서 놀랐다.
관객이 기분 나빴으면 정말 큰일 날 행동이었지만 저 관객은 웃으며 '악ㅋㅋㅋ 미xx끼 대박웃겨ㅋㅋ'하는 식이었다. 
둘 다 행복하면 괜찮은거다.


무대의상을 다시 수트케이스에 바리바리 싸서 쿨하게 떠나던 뒷모습.
언니 너무 멋있어요. 또 봐요. 


그날 밤 누구였더라 
메인 스테이지에 있던 관객들로 붐비던 공연을 보다가 이상한 드드득 하는 진동이 느껴져 사방을 쳐다본 적이 있는데
집에 와보니 이렇게 내 가방이 찢겨 있었다.
언제적 수법을!
다행히 분실한 물건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누군지 정확히 기억난다.
내 옆에 있던 패딩입은 스페인여자.
당신 사람 잘못 골랐어. 나 진심 한푼도 없거든..


피아노 반주에 피아노 연주 하시던 아저씨.
연주도 그닥일 뿐더러 교수님같이 자꾸 행복에 대해 강연하셔서 귀엽기도 했지만 지루해 죽는 줄.
내 행복 내가 알아서 합니다요.


라디오헤드를 보기 위해 기다리던 중 불타는 날씨에 한겨울 복장을 한 사람 발견.
마이 웨이.

사진이 없다. 
라디오헤드 전 SAVAGES의 공연도 정말 좋았다.
나는 당신들이 정말 맘에 들어! 지루함을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잖아! 그래서 다들 여기 온거지. 이랬나.
기억이 잘 안나네.
예쁜 척 하지 않고 약한 척 하지 않는 멋진 언니들이다.
우리들은 끝나자마자 짠듯이 베이시스트 너무 매력적이지 않냐며 얘기했다.
만두머리에 눈감고 딩가딩가 베이스만 집중해서 치는데 묘한 매력이 있다.
우린 말하지 않았지만 짠 듯이 모두 그녀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라디오헤드를 기다리는 데 장관이었다.
원래 저 왼편 구역은 vip구역으로 세비지스의 공연이 끝난 뒤 모두 나갔다가 vip만 입장을 시켜야했다.
우리도 그 안내문을 보고 오른쪽으로 온 것이었고, 당연히 비교적 여유있는 왼쪽 구역엔 사람들이 뒤늦게 찼다.
세비지스의 공연이 끝나고 좋은 자리를 차지한 관객들은 나가지 않으려했다.
규칙을 지켜 일부러 덜 좋은 자리를 선택한 관객들을 생각하면 규칙을 안지키는 그들이 미웠지만
vip구역이라는 말도 안되는 발상을 해낸 상업적인 그들이 얄미워 그 관객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이거 몸싸움 벌어지는 거 아니야.. 했는데 정말 대단히 끈질기게 안전요원들은 말로 설득을 했고
한명 두명 나가더니 그 구역이 정말 비었다.
워낙 상식적이지 않은 한국 경찰들에 익숙해져있던 나는 크게 감동을 받아 눈물이 다 날 뻔했다.
기다리던 내내 안전요원들이 물도 나눠줘서 고마웠다.
웃겼던 건 스페인어를 하는 마크가 말해줬는데 저 분들이 라디오헤드 공연을 안보셨는지,
공연때 톰욕이 중간 통로로 내려올 수 있으니 준비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네.
공연 전 그 중간 통로에 AAA였나.. 하는 팔찌를 단 사람들이 지나갔는데, 라디오헤드의 가족들이었던 것 같다.
나중엔 무대위에 왠 꼬마가 그린우드옆에 있었는데 아들이었던 것 같다
태어났는데 아빠가 라디오헤드인 인생은 어떤 인생이니.

드디어 라디오헤드. 
생전에 기회가 되면 될수록 많이 보자고 결심했던 밴드이다.
뉴질랜드에서 30시간이나 걸리는 바르셀로나에 오게 했던 밴드.
몇시간을 기다렸는데 공연 몇분전 키가 2미터는 되는 것 같은 남자애가 내 앞으로 끼어 들어와 정말 분노에 심장이 떨렸다.
공연 중에 다시 되찾긴 했지만 머리 속으로는 그 남자애의 머리채를 몇번이나 잡아챘는지 모르겠다.
연주가 너무 완벽해 앨범을 듣는 것 같아 흥분은 덜했지만 정말 좋았다.
근데 왜인지, 그렇게 기다리던 라디오헤드인데 그만큼 신나진 않았다.
파리에서 6년만인가 불렀다던 크립은 여기서도 불러줬다.
떼창의 맛. 그린우드가 암어크립 직전에 하는 크궁 크궁 하는 스크래치소리는 감동이었다.



마크와 매번 페스티벌에서 마주친다는 GRAZ라는 포럼에서 유명하다는 사람을 만났다.
독신으로 살며 신문사를 운영해 돈을 크게 벌어둬 온갖 페스티벌 및 공연을 다니며 인생을 즐긴다는 
저 분과 나는 소닉유스티를 입은 기념으로 같이 사진을 찍었다.
공중 화장실 앞에서.
나도 그렇게 살고싶다.
페스티벌 챙겨다니는 거 정말 아무 체력으로 하는 거 아니다.
나도 그렇게 건강하게 페스티벌 챙겨다닐 체력과 재력과 시간적 여유를 갖고싶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본 스티커


BOREDOMS
오후 세시 나름 이른 시간이라 관객이 별로 없었다.
까를라와 레미는 너무 피곤해 나중에 온다고 했다. 
레미는 전에 스노우보드 선수였는데 어찌어찌해서 다리에 피로를 쉽게 느낀다고했다.
난 그것도 모르고 전 날 집에 가는 길에 다리아파서 못 걷겠다는 레미에게 
너가 애기냐며 얼른 일어나라고 장난삼아 얘기했는데 너무너무 미안했다.
난 매일 페스티벌이 끝나고 새벽 세네시에 그 긴 디아고날 거리를 포함해 한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왔기 때문에 
늘 택시나 트램을 타고 집에 가곤 했던 레미가 엄살을 부린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미안해라.

아무튼. 처음 들어본 뮤지션이라 기대를 별로 안했다.
기다리며 마크가 어제 그 셋은 집에 돌아가 옥상에서 맥주를 마시며 
한참동안 라디오헤드의 공연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얘기했다고 했다.
나는 이상하게 별로 그닥 그 정도는 아니었어. 하고 털어놨는데
넌 언제나 어떤 것에도 감동받지 않잖아. 라고 해서 기분이 묘했다.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빴다.

볼덤스는 정말 좋았고 개인적으로는 라디오헤드만큼 좋았다.
어쩌면 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종류의 음악이었다.
새로운 소리였고 새로운 악기였다.
공연이 끝나고 너무 좋아 벙쩌있는 마크에게 나는 곧바로
나 이 공연 진짜 좋았어. 라고 하자 마크는 그럴줄알았어. 라고 했다.
그리고 
난 어떤 것에도 감동받지 않는게 아니야. 나는 이런 음악에 감동받아. 
라고 공연을 보는 내내 뭐라고 받아쳐야 하나 생각해 왔던 말을 뱉었다.
울컥해서 눈물이 다 날 뻔.

PJ HARVEY의 공연을 첫번째 줄에서 감상하면서도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아 기분이 이상했다.
줄리아 홀터도 너무 매력적인데 난 왜 그 음악의 매력은 잘 모르겠는지.
메인 스테이지에서 하는 이름이 큰 뮤지션들의 공연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앨범을 들을 땐 나도 꽤 좋아했는데.
난 정말 어떤것에도 감동받지 못하는 앤가.


난 이 작은 무대에서 열린 이들의 공연이 너무 좋았다.
HOLLY HERNDON은 기괴한 3D영상을 라이브로 브이제잉했고 댄서도 있었다.
공연 중간중간에 타이핑하는 것도 좋았다.
decentralize for SURE.
라고 타이핑했는데 그 당시 그 맥락에서 정말 위로 받았다.


JENNY HVAL도 너무 좋았다.
난해데스요. 난 이런거 너무 좋다.
어쩔때는 이런거 너무 싫다.
나도 나를 모르겠다.


이렇게 프리마베라는 끝이 났다.


다음 카우치서핑 호스트 호세의 집으로 왔다.
건너편 발코니에서 선탠을 하는 사람의 여유가 참 좋다.


저 타일 이구아나..? 리자드를 직접 만들어 붙였다고 한다.



그라시아지역도 좋았지만 여기도 몽주익이랑 가까운 매력넘치는 지역이었다.


살바도르 달리를 닮은 호세아저씨는 엄마 마냥 계속 간식거리와 식사를 챙겨주셨다.


마늘이 들어간 버섯 타파스와 호세만의 방식으로 만든 스파게티. 
리조또처럼 물을 끓인뒤에 버리지 않고 졸여 위에 소스와 치즈를 뿌려먹는다.
전용 파스타 면이 있다고 하는데 팬하나만으로 요리 가능한 간편한 방법.
둘 다 심플한데 왜 이렇게 맛있던지.


프리마베라는 끝났지만 도시이벤트처럼 주말간 도시 곳곳에서 프리마베라 무료연장공연이 있었다.
좀 이상한 애들이라고 내가 좋아할 것 같다고 해서 찾아온 BLACK LIPS.
기다리는 동안 수학을 전공한다는 프랑스여자애가 말을 걸어서 알게 됐는데
저 모자를 쓴 기타리스트가 유난히 똘끼있어서 유명하다고, 한번은 성기로 기타를 쳤다고 했다.
노래 진짜 별로였다. 으으으 
저 기타리스트는 성기로 기타를 치진 않았지만 침을 공중에 뱉어서 다시 입으로 받아내는 묘기를 몇번 했다.
공연 중에 허공으로 휴지를 던져서 멋진 리본을 만들어내기도 했고 그 휴지를 스테이지 천장에 꽂는 놀이를 했다.
스페인어라 내가 공감을 못해서인지 같이 있던 관객들은 그 용어가 뭐더라,
흥분해서 서로 미친듯이 밀치기 놀이를 했고 샌들을 신은 나는 가운데에 버티고 있을 수가 없었다.
가장자리에서 억지로 보고있는데 중간에 이번 곡은 중간에 친구가 나와서 도와줄거라고 했다.
그러더니 그 친구가 깜짝 프로포즈를 했다.
옆에 서있으니 백스테이지가 보였는데 계속 여자친구가 울면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웃어서 나까지 눈물이 날 뻔했다.
이거 보라고. 나 감동받지 않는 애 아니라고.
그리고 공연 막바지쯤에 내 앞으로 들어온 부자가 있었다.
단발머리를 한 여자보다 더 예쁜 남자애는 아버지랑 같이 공연을 즐기다가 옆에 막 밀치면서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는
아버지에게 데세랄 카메라를 맡기고 그 군중속으로 뒤섞여들어갔다.
멋진 가죽재킷을 입은 아버지는 고놈자식 허허허 하는 아빠미소로 아들을 바라보곤 마저 공연을 즐기셨는데
이상적인 부자의 모습이었다. 내 미래의 아들과 남편이 저랬으면.. 싶었다.
음악은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어떤 공연보다 관객들이 재밌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날.
마크가 이틀전 떠나면서 가기 전에 나보고 마지막날에 페스티벌 끝나면 뭐 할거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계획도 없다며 나 원래 여행 계획 안세우는 거 알지 않냐고 했다.
MACBA랑 어디어디서 르네상스시대 미술전이랑 비쥬얼적으로 좀 센 컨템포러리 영상 전시가 있다고 들었다고 했고
난 막바가 뭐야..? 라고 대답하자 거기서 프리마베라 연장공연도 있을거라고 
정말 아무것도 알아봤구나 하며 황당해했다.
꼭 가보라며, 온 김에 좀 잘 알아보고 즐기다 가라고.
그래서 왔다. 막바.


호세의 집에서 걸어서 십오분 밖에 안걸렸다. 
MACBA로 가는 길 골목골목마다 빈티지샵이나 힙한 버거바가 많았다.
라람블라스거리도 가까웠고, 바로 옆에 다른 미술관도 있었다.
어제 블랙립스의 공연이 있던 것도 여기였다.



보드타기 딱 좋은 층구조라 보드타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미술관 클리셰 네온사인.


나 졸업했는데 국제학생증 카드 제시하니까 할인받았다. 
표 대신 저렇게 스티커 주면 옷이나 가방 등 잘 보이는 곳에 어딘가에 부착해야한다.


ANDREA FRASER
영어판 브로셔는 다 나가고 없었다..
정말 이해하고 싶던 작가.
대부분 영상 작품이 이해가 안갔는데 두가지 정말 좋았다.
전시 오프닝 연설과 자기의 잠자리를 담은 영상.
인터뷰가 담긴 글도 좋았다.
영어로 이해한 거라 내가 잘 이해한 것인지 확신은 안들지만
정말 많은 용기를 내고 있는 당당한 페미니스트 작가.



클라이언트에게 미리 돈을 받은 뒤 제작을 한 클라이언트를 공모한 작업이랬나..
미술관 갈 때마다 영어해설문 읽느라 다크가 눈에 띄게 깊어진다.






건축 사진 찍기 좋은 구조의 MACBA


PUNK라는 주제로 엮인 전시





나는 펑크가 다다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 몰랐다.
벽에 붙은 텍스트들은 비비안 웨스트우드, 시드비셔스, 카바레 볼테르, 존라이던 등의 예를 시대별로 보여주며 
저항의 문화가 예술에 어떻게 반영되어 왔는지 영상, 음악, 이미지를 이용해 보여주고 있다.






뮌헨 올림픽 참사가 일어난 방을 그대로 재현한 작품



설치물이 회전하면서 바닥에 끌리는 마이크가 내는 소리가 참으로 좋다.


비슷한 시도. 이런 소음 너무 좋다.




버거집이 너무 많아 한 번 시도해봤는데 베지버거 패티가 그냥 야채가 아니라 커리여서 실망했다..


호세가 떠나기 전 알려준 사실. 
6유로인 공항버스 말고 일반 대중교통 카드로 공항에 갈 수 있는 버스가 있다고 했다.
M06번 이었나.. 기억이 안난다. 
로컬들은 이 버스를 타고 가는 모양이었다.
공항 버스는 와이파이가 되고 중간에 거치는 정류장이 적은 장점이 있으나
나는 10번 패스를 사고 5번이 남았던 터라 그 버스를 이용해봤다.
 아주 괜찮았다. 고마워요 호세.

전날 밤 호세와 몽주익근처 산책도 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티비를 보며 스페인 좌파인 PODEMOS당에 관한 얘기도 들었다.
생긴지 얼마 안된 이 당은 지지율이 급속도로 솟아 두번째로 센 당이 됐다고.
부러울 따름이어라.


해가 쨍쨍하던 그 날 아침.


바르셀로나를 가로지르는 디아고날을 상징하는 바르셀로나 버스좌석의 패턴.


이렇게 나는 돈을 아끼러 포르투갈로 향했다.
불안의 서를 쓴 페소아의 도시라는 정보만 갖고 무작정 포르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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